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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만남의 유품

만남 出会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소년소녀의 이야기이다. 쾌활하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쿠라와 묵묵하고 주변에 기대지 않는 하루키. 처음에 그들은 사는 세계가 달랐다. 사쿠라는 항상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반의 중심에 서있지만 하루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관심을 받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먼저 나서는 일도 없었다.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의 사이는 하루키가 우연히 병원에서 어떤 공책을 발견한 것에서 시작된다.

 

공병(共病)문고. 큰 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누군가가 쓴 일기장. 그 누군가는 바로 사쿠라였다. 투병(鬪病)이 아니라 공병문고라는 이름은 병과 함께 한다라는 뜻처럼 긍정적인 그녀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그리고 사쿠라는 자신의 시한부 사실을 들키고 나서 하루키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싶다. 그런 구실로 사쿠라는 하루키와 같이 밥을 먹거나, 디저트 카페를 가거나, 여행을 가는 등 그를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다.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해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둘의 관계는 확실히 깊어져간다.

 

죽음과 사랑 

 

그러나 이 소설은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사쿠라는 시한부 인생이다. ,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사실은 몇 번이나 강조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해피엔딩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지 못하게 한다.

 

작가는 사쿠라의 처지를 통해 죽음의 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해 이런 물음을 던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그녀는 어째서 죽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책 속에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쿠라가 죽음을 맞으며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킬 뿐이다.

삶의 곁에는 항상 죽음이 함께 있다. 그러니 함부로 자신, 혹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예측하지 마라 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하루키와 사쿠라는 서로를 사랑했다. 또 같은 반 학급위원이 사쿠라와 하루키의 사이를 질투하는 것 역시 사랑에서 촉발된 감정이다. 그리고 사쿠라는 가장 친한 친구인 쿄코를 어쩌면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정을 초월한 감정선을 나타냈다.

 

사랑과 죽음, 인간 본질의 중요한 요소들이 이 소설 속에 녹아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순한 청춘물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책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関係

 

물론 사랑은 인간관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관계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서 사람은 여러 변화를 겪는다.

 

이 소설의 서술자이기도 한 주인공 하루키는 자신을 풀잎배에 비유한다. 풀잎배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바람이나 물의 흐름 같은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다. 이렇듯 하루키는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친구도 없고 반에서 겉도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하루키를 바꾼 것이 사쿠라였다.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녀는 마치 쇄빙선과 같은 추진력으로 하루키에게 다가간다. 풀잎배와 쇄빙선, 전혀 다른 인생의 가치관을 가진 둘이지만 그렇다고 어울리지 못할 건 없었다. 처음에는 귀찮아했던 하루키도 점차 사쿠라의 권유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처음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하루키는 사쿠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녀에게 동화되어 간다. 사쿠라와 노는 것을 선택하고, 사쿠라를 기쁘게 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끝에는 자신을 바꾸기를 선택하여 수동적인 부분을 버리고 자신을 싫어했던 사람과 친구가 된다.

 

이런 일들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라면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경험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좋든 나쁘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게 한다. 그 변화는 눈에 띌 정도로 클 수도, 미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미미할 수도 있다. 타인에게 자극을 받는다거나 외모에 신경을 쓴다거나 하는 것도 모두 변화의 범주에 속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필자는 누군가를 의식한다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겪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태도를 선택하든 늘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선택에 따라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하루키처럼 말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膵臓をたべたい

 

언뜻 보기에는 하루키와 사쿠라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작가는 그런 뻔한 단어로 이 둘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마치 하루키와 사쿠라의 사이가 사랑을 넘어섰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럼 만약 사랑을 넘어서 그 이상의 감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사랑의 뜻은 일반적으로 어떤 존재를 몹시 아끼거나 귀중히 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헌신과 이해만이 사랑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꾸짖는 것 역시 사랑에 속한다. 헌신과 이해, 그리고 비판. 이미 많은 작품에서 사랑에 대해 다룬 터라 이러한 표현은 진부한 단어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복잡한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하루키와 사쿠라는 사랑을 대신할 말을 동시에 찾아낸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이다. 필자는 이 말에는 사쿠라와 하루키의 소망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사쿠라와 계속 함께 있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사쿠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사쿠라는 하루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남아있기를 바랄 것이다. 반대로 하루키는 사쿠라를 잊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로는 상대방의 신체일부를 먹는 것에 빗대어 그 사람과의 추억을 간직하고픈 마음을 나타낸 게 아니었을까


하루키와 사쿠라는 서로 완벽히 마음이 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유대가 생겨난 것이다그리고 사쿠라의 죽음 이후, 하루키는 그녀와의 유대를 원동력으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간다.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좀 더 즐겁게 살아가자고 선택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타인과의 만남은 자신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사쿠라를 통해 변한 하루키처럼 만남으로부터 촉발된 인연은 우리를 바꿔놓는다. 혹 인연의 끈이 끊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만남이 이별이 되어 사라져도 타인과 공유한 시간은 경험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행동에 영향을 끼쳐 미래로 나아가는 양분이 된다.


(현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