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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서브컬처를 넘으려는 서브컬처의 함정



시노마루 노도카, 우동 나라의 금색 털뭉치, 2012년 8월부터~ 



그러나 우동 이야기만은 아닌

 

카가와현 다카마쓰시 상점가 안에서는 어디서든 우동을 만날 수 있다. 그건 이미 충분히 많은데도 새롭게 들어서고 있는 우동 가게에서만은 아니다. 심지어 서점이나, 서브컬처 전문 가게에서도 우동과 만날 수 있다. 서점 어디에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이 우동 나라....”라는 만화 앞에서 살짝 어지러움을 느꼈다. 도대체 이 나라는... 하면서 혀를 차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깟 우동 가지고 대체 어떤 이야기가 가능할까 라는 호기심으로 일단 1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갓 뽑아낸 카가와 특유의 우동면발의 감칠맛처럼 멈출 수 없는 은은한 중독성이 있어 9권까지 다 사고 말았다.

 

일단 이 만화는 미스터 초밥왕이나 신의 물방울처럼, 요리나 술을 만들거나 감별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 타와라 소타는 분명 우동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다카마쓰를 떠난 이후 도쿄에서 웹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아온 서른 살 청년. 일찌감치 우동 다시 냄새와 결별했고 이제는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그가, 아버지의 죽음 후 다카마쓰로 돌아왔다 하더라도 바로 우동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너구리 모에?

 

그런 그를 고향에 붙잡는 것이 바로 솥뚜껑 속에서 튀어나온 너구리/소년 포코이다. 고양이도 아니고 너구리라니, 조금 황당하지만 여기에 이 만화의 중요한 요소가 감춰져 있다. 첫째로 미소녀 이미지의 너구리 귀와 꼬리는, 여태껏 없었던 모에요소라는 점, 둘째로 이 미소녀 이미지의 포코가 사실은 남자(수컷?)이라는 점. 이는 중심 캐릭터인 포코가 2000년대 서브컬처의 핵심 코드인 모에와 2010년의 여장남자()라는 코드의 결합으로 탄생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는 한 젊은이를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치규범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오히려 서브컬처적인 이미지나 내러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우동이 아니라 금색 털뭉치 모에가 타와라를 고향에 붙들어놓는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육아를 통해 만나는 오타쿠와 양키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계속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만화의 스토리는 도시로 떠나 산 청년(도시적 오타쿠)과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사는 청년들(지역 양키)의 차이를 드러내고 양자간의 공생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IT 기술을 가진 타와라는 카가와 지역 발전을 위한 섬프로젝트를 위한 홈페이지 디자인 일을 하고, 계속해서 지역에 남아 있던 누나 린코와 친구 나카지마, 그리고 이웃주민들은 포코의 육아를 도와주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것이다.

 

특히 육아는 이제까지 일본 서브컬처에서는 거부해왔던 소재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카이케이(セカイ)적인 연애나 미소녀 육성, BL은 모두 육아를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거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시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반면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육아(육성이 아니라)는 유동하는 청년을 한곳에 고정시켜, 지역커뮤니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준다. 나아가 이 만화는 남자들에게 지역사회에서의 육아는 즐거운 것임을 깨닫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기에 닥친 일본의 문제에 깊숙하게 개입한다.

 

 



서브컬처와 지역활성화

 

 

이 만화는 카가와현 활성화를 위한 카가와현 관광가이드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다. 독자는 타와라와 포코의 동선을 따라, 다카마쓰시의 코도모공원, 린츠린공원, 붓쇼잔온천은 물론이거니와 근교의 섬들인 야쿠시마, 쇼도시마와 나오시마 등 카가와의 관광명소 등을 차례로 방문하게 되는데, 이러한 배경 설정이 일종의 성지 순례를 의도하고 이뤄졌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전 일본인들에게 카가와현의 관광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미소녀 모에에 빠져 있는 오타쿠들에게 육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사회적인 기여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2016년부터 중앙네트워크인 니혼TV에서 방영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정부 이념과 사회의 가치규범에 순응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인 만화를 과연 서브컬처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이에 대한 오타쿠들의 반응은 어떤가? 오타쿠들은 모에에서 모에-육아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카마쓰시에서는 그렇게 흔하던 이 만화책이, 바로 이웃현인 에히메의 마쓰야마시 서점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