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ALKS : 서브컬처 말하기

왜 하필 대학에서 서브컬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part1



대학에서 서브컬처를 배워보니 즐겁더냐? 


박진한 강의나 세미나 이런 것들은 여러분들이 영화로 보셨을 텐데 이번 세미나는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문화연구소에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참여하신 분들도 계시고 그 다음에 세미나나 인문도시나 직접 와서 이렇게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계신 텐데 지금 1학년 2학년 학생들 중에서는 앞으로 학과에서 학과 수업이나 강의뿐만 아니라 일본문화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다양한 학술활동을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남상욱(이하 남) 안녕하세요. 남상욱입니다. 수업시간에는 제가 딱딱한 얘기만 하는데 오늘은 좀 말랑말랑하고 소프트한 얘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제가 인천대에 온 이후로 일본 서브컬처의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해서 강의를 해오고 있는데요, 오늘은 왜 하필대학에서 서브컬처를 이야기하고자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질문은 서브컬처는 대학이 아닌 곳에서 혼자 숨어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 현실을 전제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수업시간에서 몰래 스마트폰을 통해 웹튠이나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짧은 동영상 같은 짤방을 본다든지 내가 구독하고 있는 만화에 대한 최신정보를 얻는다든지, 배우와 아이돌에 대해서 얘기하는, 그런 게 우리들이 생각하는 서브컬처 아닌가요?


그러니까 여러분 혹시 게임이나 만화를 거실에서 부모님들과 같이 즐기나요? 사실 일단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시작하지 않나요? 서브컬처의 매력이나 즐거움은 사실 이러한 은밀성에 있지 않나요? 그런데 이것을 대학에서, 그것도 수업으로 한다면 어때요? 작년에 제 수업 들었던 친구들 어땠어요?

 

학생1 서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발표를 했잖아요. 개인적으로 서브컬처를 공유하는 시간이 돼서 좀 신선하기도 했어요. 서브컬처를 이론적으로 처음에 공부를 했는데 서브컬처를 이론적으로 배워서 이해했다기보다는 혼란이 왔습니다.

 

그 혼란을 저도 느끼는데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건 그거예요. 대학에서 서브컬처를 배웠는데 즐거웠어요?

 

학생1 개인적으로 즐거웠다고는...()

 

서브컬처는 몰래 할 때 즐거운 건데 이것을 대학이라는 곳에 가지고 와서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수업은 개설했지만 이 친구 얘기처럼 많은 학생들이 괴로워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수가 꼬득여서, 네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줘봐, 덕밍아웃해라고 하는데, 그게 수업이 돼서 숙제가 되고 학점이 된다는 자체가 엄청난 부담감이잖아요, 솔직히.

도대체 대학에서 왜 서브컬처를 해야하는 걸까요? 좀 더 고급스러운 문학이나 철학을 배워야지, 늘 하는 게임이나 늘 보는 웹튠을 왜 굳이 대학에서 배워야 하죠? 게임이나 만화 같은 것만 다루는 수업이 있다면, 여러분 들어갈 것 같아요?

 

학생 2 전 들어가요.

 

왜요?

 

학생 2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밝히는 데에 거부감이 없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내가 이러한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저의 일부니까요. 이러한 발표를 하고 알린다는 건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대학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서브컬처 하기 힘들까? 


이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많은 친구들 앞에서 밝히고 난 이런 사람이라고 공유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서브컬처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아요. 여학생들은 잘 알겠지만 BL이라든지, 혹은 남학생들이라면 AV라든지, 이런 것들이 넓은 의미로 서브컬처에 속하거든요. 이러한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을 대학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거죠. 사실 쉽지가 않아요.


그것은 서브컬처의 문제라기보다는 사실 대학의 문제이기도 하죠. 도대체 왜 대학이라는 곳은 어떠한 곳이길래, 우리들이 좋아하는 것을 공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있어서 주저하게 되고, 나아가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대학에서 뭔가를 하면 더 즐겁기 보다는 즐겁지 않게 되는가.

사실 대학 밖에서라면 서브컬처에 대해서 얼마든지 자유롭고 즐겁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대학에서 이걸 하게 되면 인상을 쓰고 비판하는 선생님들도 있고, 학생들 중에도 서브컬처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아 있죠. 그래서 아예 진짜 서브컬처에 덕후들은 안 오기도 하죠.

그렇다면 대학이란 어떤 곳이길래, 어떤 문화에 대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들까.

그것이 첫 번째로 짚고 넘어갈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서부터 생각해 봅시다. 대학이라는 곳은 어떤 공간인가. 여러분들에게는 대학이란 어떠한 곳이에요? 1학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왜 대학에 왔나요?

 

학생 3 저 혼자서 스스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들어왔습니다.

 

학생 4 저도 비슷하기는 한데, 제가 좋아하는 걸 하는데 힘들 거다 라는 예감은 했어요.

 

그렇군요. 그러면 대학이라는 곳이 대체 뭐기에 우리를 기대하기도 하고 동시에 실망시키기도 하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 이석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교양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학이 만들어낸 것! 



이석(이하 이)  - 저는 조금 딱딱한 얘기가 될 것 같아 미안한데요, 앞서서 한 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는 싶은데, 그게 잘 안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왔다고 했죠? 그게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대학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 말고도 자체적인 교육을 해야만 하는 커리큘럼이 있는데, 그것을 조사해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하는 것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언제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요?


애초부터 서구에서 만들어진 대학은 젊은이들의 인격과 지성을 함양하며 미학적 감수성을 개발하기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문화는 따로 선별되며 그렇게 우수한 문화를 발견하고 학습하는 기관이 되어 갑니다


보통 문화라고 생각하면 여러 가지 문화가 있잖아요. 웹툰을 보는 것도, 지하철 타고 학교 가는 것도 통근 문화가 될 수 있고 아이돌 음악을 듣는 것 통속음악을 듣는 것 그것도 문화가 될 수 있는데 대학은 그런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다룹니다예컨대 지식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리비스 부부가 대학 커리큘럼을 만드는데 기여를 많이 했는데, 리비스 부부는 천박한 대중사회 문화의 확산을 경계하고 이로부터 훌륭한 전통 문화를 지키자는 주장을 펼칩니다. 과거의 대중은 문화 엘리트들의 지적 미적 가치를 기꺼이 따르며 자신들만의 취미와 개성을 감히 드러내지 않는 수동적인 역할을 한 거죠.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대량생산체제가 들어오게 되면서 일반 대중이 스스로의 문화에 대해 애착을 갖기 시작하며, 마침내 권력을 쥐게 됩니다. 리비스는 윤리적 지적 미적 질서가 무너지고 대중으로부터 문화 엘리트들이 고립되어서 소수파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런 위기감을 가졌어요.


그러니까 리비스는 문화를 대중문화와 마이너한 엘리트들의 문화의 구도로 도식화하고, 대중문화로부터 마이너 문화를 지키기 위해 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치고 대학이 정합니다. 그리고 천박한 대중문화를 계몽, 교육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리비스에 의해 대학의 커리큘럼이 짜이고 리비스가 말하는 과거 엘리트들의 마이너 문화가 흔히 말하는 교양이 되었어요. 보통 표준어라고 하면 교양 있는 사람들의 언어라고 정해졌는데 교양이란 게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떤 시점에서 대학이 이게 좋은 거야 하고 기준을 만들기 시작해서 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전통이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닌 것입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근대문학을 1945년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대학이라는 권위와 대학이 만든 교양이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리비스 부부는 1906부터 1986년까지 살았다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시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요?

 

1 - 대중문화의 확대가 일어났어요.

 

-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봅시다.

 

1 - 원래는 조선 시대에도 그렇지만 위에서만 즐기던 문화가 있잖아요. 시라든지 이 시대에 들어오면서 서민들도 문화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 이 시대 때 영화가 발명이 되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고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찰리채플린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런 것들이 영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영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19세기에 세계의 질서를 만들었다-라는 자존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옛날 식민지였던 나라의 문화에 젖게 되죠. 그리고 영화라는 게 한번 개봉되면 여러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죠. 영화만이 아니라 라디오도 이 시대에 만들어지게 되고 45~50년에는 tv도 나오게 됩니다. 그 때 사람들은 그런 걸 보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셰익스피어보다 더 재밌구나. 찰리 채플린 보신 분 있으세요? 지금 봐도 되게 웃겨요. 우리가 책을 읽을 때보다 영화나 라디오 들을 때 멋있는 성우가 나와서 드라마 얘기를 하거나 좋은 음악이 나올 때 훨씬 마음이 쉽게 움직이죠. 그러던 시기였던 거죠. 그러던 시기에 리비스 부부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이런 대중문화가 아닌 죽어가는 운명에 처한 영국의 전통 작가들을 다 소환해서 이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여러 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커리큘럼, 과목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영국적인 것의 근원이 어디 있을까 따지고 보면 프랑스 그리스 로마 유럽 이런 데에서 고대 철학부터 대학에 흘러오게 됩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중문화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된 거죠.

 

이 - 예를 들어 찰리 채플린이 셰익스피어보다 재밌어하는 대중을 위해서 셰익스피어가 찰리 채플린보다 재밌진 않지만, 인격적으로 대중에게 도움이 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 많은 깨달음을 줄 거다. 라고 대학을 중심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죠.

 


대중을 내려다보는 지성인을 재생산하는 대학!! 



이러한 현상을 좀 더 학술적인 용어로 하면 대학이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장치였다고 할 수 있겠죠. 대중문화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지식인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대학의 기능하면 할수록 대중과 지식인의 경계가 명확해지고, 서브컬처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들이 대학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대학에서 서브컬처를 한다니? 학생들이 발표하면서 느낀 걸 점수로 환산하는 순간, 검열자이자 재판장의 역할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서브컬처를 가치판단을 위한 법정에 올리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닌가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걸 해서 내가 어떤 심판을 받을 수 있을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까? 이 공포심들이 학생들에게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발표하기 전에 제 연구실을 두드려서 이런 거 해도 되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두 번째 문제는 이 부분은 저도 조심스러워요. 이 대학은 모든 지식을 빨아들이는 일종의 블랙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예컨대 가수가 되려면 예전에 뭘 했어요? 바로 홍대 가서 버스 킹을 하잖아요. 만화가가 되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만화를 그린다던지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이 되잖아요. 최근에는 어떤가요? 대학에 가려고 하죠. 실용음악과 바둑학과 만화학과. 대학의 서브컬처 학과도 만들어지는 거죠. 문화라는 게 훈련을 통해 배우면 재밌어요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다가 이 지점은 너희가 웃어야 하는 시점이고 이 지점은 너희가 울어야해 라고 만약 여러분이 배우면 좋을까요? 문화가 과연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좋은 건가? 제가 서브컬처를 강의하지만 한편으로는 반성도 많이 해요 이게 정말 대학에서 해야 되는 건가 말아야 하나 이런 고민이 있죠.


지금 저희가 이런 제목을 선택을 한 건 단순히 서브컬처는 좋다고 말하기 이전에, 대학이라는 곳과 대학의 경계선을 넘어 배제하려고 했었던 영역이 부딪힐 때 이 부딪히는 행위를 좀 더 생각해 보자는 거죠.


대학은 그중에서도 인문학은 가치판단을 새로 하는 일종의 재판장 같은 곳이에요 예를 들면 예전에 셰익스피어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문학이 아니었어요. 대중들이 쉽게 보던 연극이었죠. 모차르트의 음악은 클래식이지만 음대에서 가르치지만 옛날에는 귀족의 밴드였죠. 그런 식으로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부르던 많은 문화들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의 감각으로 봤을 때 서브컬처였던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가지고 와도 괜찮다는 주의인거고 가지고 와야 하는지 말지에 대해 다시 물어봐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으로 수업을 개설했어요.


또 한 가지는 한 학생이 얘기를 했지만 우리가 서브컬처를 쾌락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말 통하는 친구들끼리 하는 게 좋은 거죠. 근데 대학의 수업에서는 덕후만 오지 않아요. 저는 이 기회를 통해서 서브컬처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서 들어오는 친구도 많죠. 그 얘기는 시는 아는 사람이 몰려가지만 대학의 서브컬처 강의는 모르고 처음 접하는 친구들도 들어와요 그 얘기는 나랑 다른 친구와 함께 서브컬처에 대해서 얘기해볼 수 있는 자리가 대학이라는 거죠. 저는 대학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을 넘어가면 더 끼리끼리 모이는 게 더 강해지죠. 대학이 마지막 끼리끼리를 섞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죠. 이 친구들은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 거죠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다른 것을 하느냐가 좋은 것인가 그래서 저는 이런 의미에서 서브컬처가 반드시 좋다 만이 아니라 한계도 얘기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 해야 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저희가 일문과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문과에서 나츠메 소세키를 읽힙니다. 국민작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츠메 소세키를 다 읽었을 거라고 얘기하면서요. 하지만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일본 대학생도 나츠메 소세키 안 읽은 사람도 많아요. 그렇다면 나츠메 소세키를 안 읽은 일본인과 또 다른 대화의 루트를 찾을 것인가 했을 때 나는 나츠메 소세키는 안 봤지만 신카이 마코토는 좋아해 akb좋아해, 나는 대학에서 억지로 배웠지만 사실은 이런 거 집에서 맨날 해 해, 하는 식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통로로서 서브컬처가 기능하고 있습니다. 서브컬처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은 결국 일본인 한 사람에 대한 이해 지평을 조금 넓힐 수도 있는 거죠. 맨날 문 걸어 잠그고 있는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덕질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저는 그래야 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관점에서 서브컬처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알리바이에요.


그 다음 맨 마지막 게 하나가 있는데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걸 감추지 말고 해보고 싶다는 게 있어요. 근데 이 부분이 여러분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어요. 아이비리그 같은 명문대에는 서브컬처 강의가 없고 칸트나 헤밍웨이를 가르치는 중요한 시간에, 학생들의 시간을 뺏는다고 할 수도 있죠. 약간 죄책감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이석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서브컬처 모르는 사람과 서브컬처 말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서 대학 



- 저는 그런 죄책감이 없어요. 제 경우에는 말이죠,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 수업을 듣게 된다면 최소한 자기 소개 법은 배우게 될 거예요(웃움). 사실 입사뿐만 아니라 미팅을 나간다고 해도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기회가 굉장히 많지 않나요? 자기를 소개한다고 했을 때 상대방이 서브컬처에 관심이 있으면 서로 금방 친해지지만, 예컨대 나는 엑소의 팬인데 상대방은 듣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면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가가 큰 문제로 다가오죠. 입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의 상황에 있어서도요. 혹은 부모님께도 소개할 수 있죠. 부모님도 자기 자식 잘 모르거든요. 부모님께 나를 어떻게 소개하는가. 부모님과도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한국사회는 세대별로 정치적 정향도 다르고 경험도 다르고 세대 간의 갭이 굉장히 커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어른들, 특히 서브컬처에 관심이 없는 분들께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그런 것을 대학이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제 수업이나 서브컬처 강의를 듣고 선생님이 쓰는 용어라든지 그런 걸 배워서 자기를 소개할 때 쓸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 이석 선생님은 소개라고 얘기를 했지만 그것은 인문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번역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어요. DC 사람만 쓰는 단어를 어른들의 단어로 바꿀 수 있느냐죠. 여러분들이 번역 생각하면 한국어를 일본어로 바꾸는 것 등만 생각하는데 사실 디씨의 용어는 참 특이하잖아요. '덕밍아웃'을 부모님께 쓰면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이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기 위해선 일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해야죠.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서브컬처가 재밌는 것이 그 집단 특유의 언어를 써야 재밌는 건데 번역하면 여전히 재미있을까요?

 

-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엑소를 열심히 팠더니 어떤 부분은 이해가 안됐는데 알고 보니 서양 소설을 인용했다더라, 영화의 명장면을 패러디 한 건데, 옛날에는 몰랐는데 제 강의 같은 걸 듣다보니 패러디구나, 시대를 반영했구나 하면서 더 깊게 파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럼 학생들에게 질문 해볼게요. 제 수업 때 아이돌마스터로 많은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했었던 친구,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이 얻은 게 많나요? 잃은 게 많나요?

 

학생 2 - 저는 개인적으로 고민도 하고 힘들기도 했는데 다 만들고서는 즐거웠습니다.

 

- 만드는 과정은 힘들지만 글 쓰는 것도 만들면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서브컬처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스스로 정리하는 면도 있지 않나요? 옛날에는 아이돌 마스터를 그냥 즐겁다 정도였는데 글로 써보니까, 뭔가 이래서 내가 이걸 좋아하는구나, 그저 좋다는 형용사가 아닌 다른 언어로 바꿀 수 있으니까 좀 뿌듯하지 않나요?

 

- 사실은 아마 교수님은 발표를 이해해주시겠지만 한펀으로는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겠죠?

 

학생 2 부모님께 보여드릴 생각은 안 했습니다. (.)